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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내림의 첫 뿌리

인간은 창조이래 '높은 곳에의 외경감'을 가지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민족의 사원, 실화 등에 구름 덮인 산은 대개가 신앙의 대상이었다. 우리의 백두 단군시조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히말라야 산 인근의 모든 국가는 그 장엄한 백설 덮인 높은 산들을, 그리고 인근 중국이나 몽고 등 우랄알타이족들 대부분 태산이라 하여 곤륜산맥 준봉들에 그들 마음을 담아 왔다.

성서에 나오는 시내 산, 또는 아라랏 산 등 인류문명 발상지의 언저리에는 꼭 "높은 곳은 거룩하며,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인도해 주는 근원'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높은 곳에 대한 깊은 외경은 자연히 높은 가치의 삶이 주어진다고 믿어져 힘들지만 "높은 곳에로의 여행"에서 "산신령"이 됐다거나, "십계명"을 받았다거나 하여 소원과 생할 규범 의를 깨우쳐 주기도 했다. 또한, 높은 곳에 오르내린 인물은 대개 그 시대, 그 사회 씨족의 지도자로 군림하게 되는데, 왕검성에 내린 단군이나 성서의 아브라함, 모세 등의 예는 그 좋은 본보기일 것이다. 그러면서 차츰 그 높은 거룩한 곳에 인간의 정성을 바쳐야 한다는 마음으로 자연적이 아닌 인간의 지혜와 힘을 합쳐 그 어떤 표시, 즉 축조물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그 예를 보자, 강화도의 마니산은 그 섬에서도 가장 높은 산이며, 그 산 정상엔 아득히 오랜 옛날에 축조된 "참성단"이 있다. 중국에는 물론 외침 대비라고는 해도 만리장성이라는 어마어마한 축조물이 기원전부터 그 오랫동안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그리스의 아테네에는 이미 기원전 7세기 훨씬 전부터 장중한 아폴로 신전, 파르테논 신전 등이 대단한 위엄으로 버티고 있고, 또한 이집트의 피라미드이나 스핑크스 등은 기원전에 왕조의 영광과 권위를 "높은 곳"과 결부시키려 하여 사막 위에 제일 높게 쌓아 올리는 큰 역사를 했다.

왼쪽사진은 마니산 참성단 사진이며, 오른쪽 사진은 이집트 스핑크스 사진 입니다.

성서의 창세기엔 얼마나 높은 공중에서 쌓아 올렸던지 언어마저 바뀌게 한 바벨탑의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돌이 있음직도 아니한 마니산 꼭대기 참성단의 큰 축대들이나 층계 돌 등 長城의 그 많은 돌들, 10미터가 넘는 신전의 기둥들과 몇 톤이나 되는 스핑크스 ,피라미드의 사막에는 없는 돌 등을 우선 어떻게 찾아내어 다듬고, 운반하고, 그리고 높이 쌓았을까?

왼쪽 사진은 바벨탑 축조 광경 사진이며, 오른쪽 사진은 피라미트 축조 광경 사진 입니다.

사람의 힘 지혜-오르내림의 도구

지금처럼 여러 가지 기계나 기구, 도구들이 없었던 그 옛날에 앞에서 거명한 건축물들을 비롯하여 기원전 후 지구 곳곳의 대형 축조물들에 쓰이는 엄청난 원석이나 석조물, 그리고 목재들은 어떻게 운반되어 양 중 되었으며, 종이도 없었던 시절에 설계도면의 원형은 어떠했을까? 특히, 승강기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양중장치나 하강장치, 곧 승강장치에 대해서는 매우 흥미로운 상상으로 추리해 볼 만한 일일 것이다.

유추해 보건대, 첫째는 사람의 힘(人力)과 이를 이용하도록 유도해 나가는 사람의 지혜(人智)로 役事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둘째로, 사람의 지혜로 이용하기 쉬운 질긴 식물이나 만들어진 끈(ROPE)과 망치, 칼, 도끼, 징, 잘 굴러갈 수 있는 둥근 목재, 쐐기 등이 이용되었을 것이고, 이 중에서 양 중에 가장 공헌이 컸던 가장 최초의 도구는 아마도 쐐기와 망치, 그리고 도르래였을 것이다. 또한, 그 일들에 쓰이는 도구나 기구 등이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이 합쳐져 이루어진 모양새를 "장치"라고 하는데, "어떠한 힘" 즉, 사람 또는 동물의 힘이나 증기, 전기의 힘이 가해져 상하로 움직여지게 되면 이것이 곧 "승강장치이다.

승강장치의 원형 중 하나의 예로는 "우물의 두레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두레박은 물이 담길 수 있는 그릇과 끈이 합성된 것인데, 직접 사람의 힘만 가해지면 昇降이 가능한 간단한 장치이다. 그러나, 깊은 우물에 사용할 경우 사용자는 많은 힘을 소모하게 됨으로써 사람의 지혜는 도르래와 바퀴를 첨가하여 그 효율을 높였을 것이다. 일례로 1960년대 초반만 해도 돌을 부수어 내는 석산에 가보면 돌의 결을 따라 큰 돌이 쪼개지고, 그 쐐기를 박은 틈새로 족장목과 같은 둥근 나무를 넣어 굴려가면서 운반하는 모습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렇듯이 쐐기를 벌리며 오르내리던 일에서부터 차츰 사람들은 굴러가는 힘의 원리를 깨닫고, 도르래 수레바퀴를 발달시켰을 것이다. 이 도르래와 수레바퀴의 발명이야말로 승강장치를 가능하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일 것이며, 산업혁명의 증기동력 발명 이전의 가장 가치 있는 발명품 중 하나일 것이다.

기원전부터 산업혁명 전까지의 많은 암각화나 풍속화 등 역사적 기록이나 기록화 등을 보면 개미떼처럼 줄을 선 노예들이 큰 석상이나 석조물체를 운반하는 모습이나, 소, 말과 같은 가축이 연지 방아를 돌리는 모습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기원전 6세기경의 한 석조 조각물을 보면 그 시대에 이미 칼과 물통을 가지고 나란히 선 정정들이 돌을 다듬는 모습이 있다.

우리나라의 각지에 산재해 있는 성벽이나 궁궐들이며, 중국의 만리장성, 자금성과 같은 축조물들, 그리고 이집트의 피라미드이나 그리스의 신전들, 로마의 쿨라세움, 서구 각 구에 널려 있는 중세의 대성당이나 古城들과 같은 대 건조물에 얼마만큼의 인력이 동원되었고, 그에 못지않게 많은 종류의 도구들이 사용되어 揚重·降下하며 축조되었을까 하는데 서는 꽤 그 상상의 끝이 혼미해진다.

콜로세움 사진 입니다.

동력이동 이전의 승강장치

기원전 그리스의 대 학자인 아르키메데스가 로프와 도르래, 그리고 드럼을 이용하여 승강장치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위대한 축조물은 역시 위대한 인간 두뇌의 산물이 공헌했음을 짐작 캐 한다.

쇠로 만든 각종 도구와 도르래, 수레바퀴 이용의 확산만으로도 先人들은 훌륭한 운반.승강장치로 여겨 우리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수많은 기념비적 축조물들을 지구촌 곳곳에 세웠다.

우리의 경우를 보더라도 水原城, 즉 華城(사적 3호)築造가 그 一例이다. 효자인 正祖(李蒜 22대, 1752~1800)가 뒤주 속에서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 父王 사도세자의 陵을 지금의 양주에서 수원의 花山에 이장하고 수원일대를 축성하였다. 이 성은 正祖 18년(1974년)에 시작하여 20년에 완성한 것으로 외국의 성곽에 비해 그리 큰 규모는 아니나, 종묘, 석굴암과 다 같이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을 만큼 성곽미를 고루 갖추고 있다. 전장 5,525미터, 높이는 약 7미터 정도로써 남족의 정문인 八達門과 북쪽의 정문인 長安門은 2층 누각의 웅장한 문이고 동쪽의 蒼龍門과 서쪽의 華西門을 연결하는 半月形의 성곽으로 포루와 각루, 봉돈, 공심돈, 여대 등을 고루 갖추었고, 배어난 경관으로 팔달산정의 수어장대와 수원천을 가로지른 화홍문(수문)과 방화수류정 등을 성광에 이어 놓고 있다.

이 수원성은 정조의 명을 받아 실학파의 거두인 다산 정약용이 설계하고, 채재공, 조심태 등이 감독하여 불과 3년만에 완공한 성곽이다. 본래 수원은 예나 지금이나 농경의 중심지였다.

수원 중앙의 128미터 높이의 팔달산 능선을 따라 서편 성곽은 축조되었고, 그 밖의 남.동.북쪽은 평야지대에 축조되었는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평야 지대인 수원일대에서 다량의 돌을 캘만한 석산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많은 석재들을 외지에서 운반하여 능선을 따라 높이 축조하는 일은 현대 축조기술로도 상당기간을 요하는 큰 役事가 아닐 수 없는데, 동력수단이 없었던 그 시대를 감안한다면 수많은 인력은 물론 그 나름대로 승강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水原城役儀軌"등 축성기록을 보면 이 화성건설에 연 376,343명이 동원되었는데 그 중 기술장인이 18,821명이었다. 또한 石材가 201,400덩이, 기와 530,000장, 벽돌 695,000장, 木材 26,206주 등이 사용됐다고 기록했다. 이 막대한 물자들을 운반, 인양하기 위해 다산 정양공이 고안, 제작한 擧重機(일종의 기중기)를 사용했는데, 이 거중기는 불과 40근의 힘을 가하여 25,000근의 무게를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이 거중기는 우리 역사상 승강장치의 원형으로 기록된 제1호인 셈이다.

왼쪽 사진은 수원성 사진이며, 오른쪽 사진은 수원성 축성 시  사용된 거중기 사진입니다.

그렇다면, 서양의 승강장치는 어떠했을까? 1983년 OTIS社에서 발간한[GOING UP] 이란 책자에서 저자 JEAN GAVOS는 승강장치가 이미 기원전부터 발달하여 왔었음을 보여 주는 여러 사례를 매우 흥미롭게 기술하고 있다. 그중 로마의 라테란 박물관(ROME, LATERAN MUSEUM)에 소장되 있는 한 전시물은 인력 승강기의 한 원형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동서양의 城의 차이를 보면, 동양의 성은 長城이면서 그 높이가 별로 높지 않으나, 서양의 성은 短城이면서 아주 높이 쌓아 올려 말 그대로 요새화되어 있다. 즉, 동양은 성곽으로 둘러 쌓았고, 서양은 성채(城砦)로 둘러 쌓았다. 동양의 성벽은 보통 10미터를 넘지 않으나, 서양의 것은 보통 10미터 이상으로써 최고의 것은 40미터에 이르는 석성벽(石城壁)이 있다고 한다.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있는 성주 또는 영주나 지배계층이 그 높은 석성벽을 힘들게 오르내리며 지휘하거나 생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 나름대로의 승강기구가 있었을 것으로 미뤄 짐작되나, 그렇게 구체적으로 오르내리는 인력 승강기계와 다름 없는 장치가 전시되어 있음에 놀라울 뿐이다.

수원성을 싸기 시작한 1790년 이전에 서양 각국에는 이미 어마어마한 규모의 大聖堂이나 영주들의 성벽들과 황궁(皇宮)들이 즐비하게 건축 또는 축조되었는데, 그런 것들의 높이들은 현대의 고층 건물과도 비교될 만하여 현재까지도 관광명소로 되어있음을 익히 접하는 바이다. 대개 그러한 건축물의 옥탑 위에는 매우 큰 수레바퀴에 굵은 로프를 휘말아 감는 틀이 있어 중량물을 인양할 수 있도록 한 장치가 남아 있는 곳이 많다. 이렇듯 동서양에서 각양각색의 승강장치가 만들어지면서, 특히 톱니바퀴의 출현은 승강장치의 역효율을 증가시켰음은 물론 안전성의 재고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7세기 파스칼(PASCAL)이 발견한 "水壓의 原理"가 응용된 수압기관의 발명(1953년)과 18세기 초 세이버리(T. SAWERY)를 필두로 하여 뉴커먼(T. NEWCOMEN), 왓트(WATT)등이 잇따라 개량하여 발명해낸 증기원동기관은 각종 승강창치의 개량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물결은 기계기술의 발전에도 획기적인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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